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김영무 재산 – 베일에 가려진 김앤장의 대표, 김영무 변호사“?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you.avitour.vn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t1.thai2arab.com/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느긋느긋의 서울일주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3,568회 및 좋아요 58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Table of Contents
김영무 재산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베일에 가려진 김앤장의 대표, 김영무 변호사 – 김영무 재산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자\”
1999년 김앤장의 김영무 변호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자신의 인생 철학입니다.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던 김영무 변호사의 흔적을 쫓아서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오늘도 영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영무 재산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김앤장 대표 누구? 김영무 변호사 연봉 재산 학력 총정리
김앤장 법률사무소 1973년 김영무 변호사가 설립하고, 같은해 장수길 변호사가 합류해서 김앤장이라는 회사가 만들어졌죠. 이후 ‘이재후 판사’를 영입 …
Source: gyodae8267.tistory.com
Date Published: 9/2/2022
View: 2570
김영무 – 나무위키:대문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세운 김영무 대표변호사는 김앤장 조직 내의 … 근무한 불과 4개월 동안 재산이 4억 원 넘게 증가하여 전관예우 논란이 있었다.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6/8/2021
View: 1376
김영무씨는 재산이 얼마나 될까? – 부동산 갤러리 – 디시인사이드
김앤장 로펌 설립자중에 한명인 김영무 변호사대충 이력이 아버지가 아마 이승만 주치의였나? 그럴꺼다 부모님도 존나 쩔고자기…
Source: m.dcinside.com
Date Published: 2/15/2022
View: 5072
김앤장 오너가 김영무 변호사인데 : MLBPARK
이 분 재산은 왜 부자순위에 안 잡히죠?한 해에 600억을 벌었다는 소문도 있던데.
Source: mlbpark.donga.com
Date Published: 11/28/2021
View: 5735
[인물연구] 김영무 김&장 법률사무소 대표 – 매일경제
재산이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과묵한 성격 탓일까. 그는 끝내 자신의 재산을 말하지 않았다. 이런 말로 대신했다. “집사 람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대목 …
Source: www.mk.co.kr
Date Published: 9/25/2021
View: 4466
김영무 (법조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영무(金永珷, 1942년 7월 19일 ~ )는 국무총리실 법무담당 보좌관, 상공부 자문위원, 은행감독원 금융분쟁위원회 위원, 증권관리위원회 비상임위원, 중앙일보 사외 …
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11/13/2021
View: 1785
‘대체 얼마나 주길래’ 업계 1위 김앤장의 놀라운 연봉수준
김앤장의 오너인 김영무 대표변호사의 2005년과 2006년 소득신고 금액은 … 포브스 한국 부자 21위, 여성 1위 16억 달러 상당 재산 보유 총재산 중 …
Source: m.post.naver.com
Date Published: 4/3/2021
View: 881
김앤장 2세 승계작업 착수했다 – 주간경향
김앤장 법률사무소 설립자 김영무 대표 변호사는 1942년생으로 우리나이로 75세다. … 정확히는 지적재산 분야의 주요 직책을 주려고 했다.
Source: m.weekly.khan.co.kr
Date Published: 8/12/2022
View: 6600
대한민국 ‘연봉 킹’은 누구? – 미래한국 Weekly
자생한방병원 S씨 연봉 204억, ‘김&장’ 대표 김영무 변호사는 600억 원 소문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email protected]지난 4월 3일 취업 포털 …
Source: www.futurekorea.co.kr
Date Published: 7/25/2022
View: 8976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김영무 재산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베일에 가려진 김앤장의 대표, 김영무 변호사.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김영무 재산
- Author: 느긋느긋의 서울일주
- Views: 조회수 3,568회
- Likes: 좋아요 58개
- Date Published: 2022. 4. 1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eR6Gs9ERMWQ
김앤장 대표 누구? 김영무 변호사 연봉 재산 학력 총정리
반응형
김영무 변호사(좌), 장수길 변호사 (중앙), 이재후 판사 (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1973년 김영무 변호사가 설립하고,
같은해 장수길 변호사가 합류해서
김앤장이라는 회사가 만들어졌죠.
이후 ‘이재후 판사’를 영입해서 김영무,장수길,이재후
3인 대표로 운영되지만
실질적인 오너는 김영무 변호사라고 볼수 있습니다.
김영무 변호사 (네이버 인물검색)
김영무 학력 경력사항
1942년 서울에서 출생
-덕수초
-경기중
-경기고
-서울대
김영무대표의 아버지는 이승만대통령의 주치의였다고 합니다.
서울대 재학시절인 한번의 사법시험에 떨어진 경험이 있고 이듬해인
1963년 제2회 사법고시 차석으로 합격해서 사법연수원을 수료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1967년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에서 석사학위 취득
-하버드 로스쿨에서 한국인최초 법무박사를 취득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
미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굵직한 로펌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고,
31살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법무법인을 설립합니다. 이것이 바로
김앤장의 시작입니다.
병역기피를 위해서 만 31세가 되어서
한국에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기존의 법무법인과는 차별화된 방향을 잡았습니다.
최초의 전문 로펌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이와 뜻을 함께한
인재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김앤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합니다.
유학제도를 통해 최고의 인재를 양성할수 있도록 지원했고
그결과 더 많은 인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탁월한 경영능력과 리더십으로 김앤장의 성공을 이끈
핵심인물이 바로 김영무 변호사 입니다.
명실상부 국내 최대, 최고의 로펌이 되었으며
초 엘리트 집단으로 명성을 뽐내게 되죠.
제41회 납세자의날 행사에서 대통령표창을 받고있는 김영무 변호사
김앤장의 차별성과 문화
특이점이라고 볼수 있는것은 국내에서
보기힘든 오너중심의 경영체제를
갖고있다는 것입니다.
파트너십으로 몸집을 키워온 다른 로펌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김앤장은 수직구조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로펌입니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일을 배분해주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일을 할수 없도록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김앤장의 기업문화라고 합니다. 선배들의 갑질은 없지만
윗사람,선배,상급자에게 잘못보이면 일을 배정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장수길 변호사는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앤장 학력
김앤장은 경기고-서울대 라인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서울대 출신이 전체의 80~90%나 된다고 하죠.
게다가 경기고 출신은 9%라고 합니다.
현재 1,000명이 넘는 변호사가 소속되어 있다고 합니다.)
김앤장은 설립한지 47년만에 100배가 넘는 성장을 이뤄냈으며
국내 1위, 그것도 부동의 1위 로펌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김앤장 연봉
김앤장은 초봉 1억원이 넘습니다.
약 1억3천만원~1억4천만원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세후 900만원을 통장에 꽂아주는(?)것으로도 유명합니다.
2017년기준으로 김앤장의 119명 번호사는
연봉이 9억원 이상이라는 조사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2~5위 대형로펌에서는 세후 700만원~800만원 정도 준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만큼 일도 많이시켜서
눈코뜰세 없이 바쁜것으로도 유명하죠.
국회 증언 거부 논란
2011년 박한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김영무 변호사가 증인으로 채택됩니다.
김앤장 측에서는 증인을 이재후 변호사로
변경해달라고 하면서 로비를 했고,
김영무 변호사는 청문회 이틀전에 미국으로
출장을 간다면서 증인으로 참석하지 않았고,
이때문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부터 고발을 당하게
되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사건을 마무리 됩니다.
배금주의 논란
우리나라에서 손에꼽을만큼 돈을 많이 벌고 있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기부나 사회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것으로 알려졌습니다.
IMF때 재벌들의 이익을 대변하기도 했고,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넘어갈때도 김앤장은 이슈의 중심에
서있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나라가 떠들썩 할때도, 옥시의 법률대리인을
맡기도 했었죠.
이때문에,
김앤장은 돈만주면 범죄자들도 변호해주는 것이라는 질책을 받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것은 아닐테니,
왈가와부할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김영무 변호사 가족관계와 장남의 세습논란
김영무 변호사의 장남 김현주에게
김앤장을 승계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김앤장을 제외한 국내 대형 로펌에는 오너가 없습니다.
파트너 변호사와의
협력관계를 통해서 공동대표로써 운영을 하는것이죠.
김앤장만 유일하게 오너경영을 하는 로펌입니다.
변호사들과 연봉계약을 통해서
수직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역시 로펌계의 이건희라고 불릴만 한것 같네요.
김영무 대표는 1남1녀를 두고 있습니다.
장남 김현주씨는 뉴욕대 로스쿨을
나와서 미국변호사가 되었고,
딸인 김선희씨는 현대비앤지스틸
정문선부사장과 결혼하였습니다.
최근 법조계에서 김앤장의 승계작업에
주목하고 있는 분위기 입니다.
시니어급 변호사들이 대거 이탈했는데,
그이유가 승계작업에 반발해서
변호사들이 스스로 떠난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김영무변호사는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것으로 유명합니다.
포털사이트를 뒤져보더라도 사진을 찾아보기가 어렵죠.
김앤장 대표 재산, 집
개인소득으로는 비공식 국내 1위라는
소문이 있을만큼개인소유의
재산이 엄청나게 많다고 하네요.
2005년 570억원, 다음해에는 600억원의
소득세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이 액수는 같은년도 故이건희 회장보다도 더 많았다고 하네요.
입구정 현대아파트에 살던 시절에는
도둑들에 표적이 된적이 있다고 합니다.
소득순위가 공개되면서 유명해졌기 때문이죠.
종로구에 빌라로 이사를 하게된 이유가
이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영무 대표 변호사 프로필
은탑산업훈장(92년)
혈액형 : O형 , 무교
키 170cm , 70kg
이상으로 김앤장과
김영무 대표변호사의
키워드들을 체크해보았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버튼을 눌러주세요.
포스팅 작성에 큰 힘이 됩니다.
반응형
김영무씨는 재산이 얼마나 될까?
김앤장 로펌 설립자중에 한명인 김영무 변호사
대충 이력이 아버지가 아마 이승만 주치의였나? 그럴꺼다 부모님도 존나 쩔고
자기도 설법-사시-하버드 초특급엘리트코스 밟고…
전성기때는 1년에 600억씩 벌었다는데 예전 신문기사에서 봤던것 같다.
아들넘은 서울대는 갔는데 아버지가 돈이 쩔게 많으니까 젊을때 오입질좀 하느라 사시합격은 못했고 로스쿨제도의 수혜를 본것 같고…
아들딸 전부 GS등 대기업이랑 사돈 맺었고… 자식농사도 이정도면 괜찮게 했고
대법관출신 전관예우 뿐만 아니라 한승수 전 국무총리등 정계 끗발 죽이는 사람들도 김앤장 원로자문위원등으로 정계 완장 풀고
들어가거나 하는 사례가 많아서..반대로 김앤장 출신이 정계 진출 하는경우도 많고
철의장벽 회전문이 돌고 있지
돈뿐만 아니라, 권력으로도 김앤장 로펌은 진짜 굴지인듯 하다 삼성후빨도 서로 열심히 해주고…
여하튼 우리나라 최고로펌이니까 법조계 끗발 죽이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사람 얘기는 별로 없네
이정도면 한국부호 순위에 오르락내리락 할만도 한데 진짜 존나 많을텐데 얼마나 벌었을까? ㅎㅎ
김앤장은 비서등도 거의 서울대 출신만 받는걸로 알고있다 위엄 쩜…
예전에 김앤장에 조금 관심 있어서 좀 줏어모은 썰들 풀어봤어~
난 김영무 재산이 제일 존나 궁금하다
부동산 이야기 : 연해주(블라디보스톸)를 한국놈이 매입하면 간지나는 발해인의 기상 한국땅
[인물연구] 김영무 김& 법률사무소 대표
[] 신상명세·출생:서울 42년 7월 19일(양력)
·출신학교:덕수초등학교, 경기중·고,
서울대 법학(64)
미국 시카고대 석사,
하버드대 법학박사(J.D)
·주요경력:재무부 외자도입심의위원회 위원·법무부 민-상법 개정특
위 위원·상공부 통상정책자문위원·상공부 무역위원회 무역위원·21
세기위원회 의원·증권관리위원회 비상임위원·한국통신 비상임이사
(현)·은행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위원·김 앤드 장 법률사무소
대표(현)
·상훈:은탑산업훈장(92)
·혈액형:O형 /·종교:없음
·신장 및 체중:170㎝ / 70㎏
·주량:소주 2홉짜리 반병 /·담배:못함
·존경하는 인물:이율곡
·기호식품:청국장(1주일에 한 번)
·집:빌라(80평짜리)
·재산:밝히지 않음
·취미:산책 및 골프(핸디캡 15)
·가족관계:신수희 여사(50)와의
사이에 1남 1녀
·건강관리:산책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이름있는 변호사와 프로골퍼가 수영장에
갔다. 두 사람 다 수영할 생각은 않고 그만 물 속에 가라앉았다. 프로
골퍼는 머리를 들지 않아야 한다는 잠재의식 때문에 그만 물 밑으로
빠졌다. 골퍼에게 헤드업(고개를 드는 것)은 금물이다.
그렇다면 변호사는 왜 물에 빠졌을까. 변호사는 두 손으로 입을 꼭 막
으면서 몸부림을 쳤다. 당연히 물 속에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고객
과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수영을 할 수 없었던 셈이다.
변호사 업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김영무 김·장 법률사무소 대표
(57). 그의 성공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또한 어떻게 해서 동양 최대라
는 말을 들을 만큼 200여명의 변호사를 거느린 법률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을까. 성공 비결은 많았을 것이다.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
인은 고객과의 비밀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이 아닐까. 아마 그도 수영장
에 가면 헤엄을 치지 않고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신중하다.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귀공자 타입이다. 눈 쌍커풀 하며 이목구비
가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을 만큼 잘 생겼다. 실제 나이는 57세지
만 언뜻 봐선 40대 후반으로 보일 정도다. 겨우 2년 전부터 흰 머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어른(?) 대접을 받을 정도가 됐다.
유순하게 보인다. 실제로 그는 마음이 여리다. 주위에서도 마음이 약하
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TV 드라마를 좋아한다. 주
말 연속극을 자주 보는 편이다. 사극도 좋아한다. 주말이면 부인과 TV
채널을 놓고 실랑이를 벌린다고 털어놓는다. 부인은 교양 프로를 좋아
하기 때문에 주말이면 이런 일은 자주 벌어진다. 평일엔 TV 볼 시간
이 없어 다행히 ‘사랑 싸움’ 할 시간이 없다.
의식은 서구적이지만 입맛은 한국적이다. 1주일에 한 번씩 청국장 집
을 찾을 정도다. 술도 소주를 즐긴다. 많이 하지는 못하지만 반병쯤은
마신다. 담배는 하지 않는 편이지만 고민이 많을 때엔 한두가피를 집
어 들기도 한다. 재산이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과묵한 성격 탓일까.
그는 끝내 자신의 재산을 말하지 않았다. 이런 말로 대신했다. “집사
람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대목입니다.” 94년 국세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는 10억원 이상을 소득세로 냈다.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살 때엔 유명세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소득세 순위가 발표되면서 도둑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도둑을
맞은 적도 있다. 몇년 전에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빌라로 이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둑을 피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소득에 걸맞게
80평 빌라에서 산다. 골프 회원권도 3개나 갖고 있다.
그 자신은 명예와 권력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관에서도 그런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자’는 게 그의 철학이다. 너무
큰 꿈을 가지면 피곤하다는 생각이다. 임관도 포기하고 유학 길에 오
른 것이나 법관 경험도 없이 곧바로 변호사 생활을 한 것도 ‘소박하
게 살자’는 소신 때문이었다. 이런 생활 철학은 그의 성장 배경에서
도 찾을 수 있다.
그야말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서울 낙원동이 생활 터전이었다.
부친인 김승현씨는 유명한 내과의사였다. 고 이승만 대통령 주치의를
지냈다. 낙원동에 ‘김승현 내과’를 차리고 50년 넘게 의사 생활을
했다.
부친의 영향을 받아 6남매 가운데 두 형은 의사 길을 걷고 있다. 남동
생인 김영욱씨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바이얼리니스트로 활동중이다.
그는 덕수초등학교를 다녔고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나왔다. 곧
바로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수학이나 화학
과목을 싫어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문과를 선택했다. 처음부터 법관이
나 변호사를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법학과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사법시험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두번째
에 합격했다. 법관이 되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공부를 하지 않은
결과였다. 학부를 졸업한 해인 64년에 2등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지금의 사법연수원인 서울대 사법대학원에 들어갔고, 연수 과정의 일
환으로 미국 시카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고시 동기들은 임관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유학을 좋아하지 않았
으나, 그는 과감히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미국행은 그의 인생의
좌표를 확실하게 만들어준 계기가 됐다. “정통으로 법학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버드대 법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갔다”고 전한다. 67
년 시카고대에서 비교법학으로 석사학위를, 70년엔 하버드대에서 법학
박사(J.D) 학위를 받았다. 이런 배경으로 미국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
증도 갖고 있다. 국내에 들어와 국무총리 비서실 법무담당 보좌관으로
1년 동안 일했다.
당시 정일권 총리가 영어를 할 줄 아는 젊은 변호사를 찾고 있는 상황
에서 그가 천거됐던 것. 군 복무를 마치기 위해 보좌관을 그만두고 군
법무관 생활을 했다.
73년 드디어 ‘김 앤드 장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자신의 성에서 ‘
김’을 동료인 장수길 변호사의 성을 따서 사무소 이름을 지었다. 당
시 미국에선 이런 형식의 로펌들이 많았다.
틈틈히 대외활동에도 참여했다. 본인의 의사보다도 외부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주로 경제 관련 부처의 자문 역할을 했다. 재무부 외자도입
심의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상공부 통상정책자문위원과 무역위원회 무
역위원을 맡기도 했다. 자신의 전공 때문에 법무부 민상법 개정특별위
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89년부터 94년까지 21세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증
권관리위원회 비상임위원(91∼95)으로도 참여했다. 유일하게 중복 활동
한 경우다. 지난해부터 한국통신 비상임이사로 있다.
[인맥]경기고와 서울대 법대
인맥이 탄탄하다.
자신은 변호사로 ‘출세’했지만
고시 동료들도 큰 자리에
올라 있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 동기로는
서성 대법관을 들 수 있다.
사법시험 2회 출신 가운데
법원장만 해도 5명에 달한다.
강철구 대구지방법원장·
이동락 광주고등법원장·
양인평 대전지방법원장·
이용우 서울지방법원장·
안문태 부산고등법원장
등이 그들이다.
고시 동기들 가운데 관료와
정치인도 상당수 있다.
김정길 행자부 장관을 비롯해
허경만 전남도지사·차수명
국회의원(자민련)·신상두
감사원 감사위원 등을 들 수 있다.
국민대 정성진 교수는
고시 동기이고
현대경제연구원 김중웅 원장은
경제흐름을 일깨워주는
대학 동기다.
덕수초등학교 죽마고우로는
과거 공정거래위원회에
몸담았던
박유광씨가 대표적이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영무(金永珷, 1942년 7월 19일 ~ )는 국무총리실 법무담당 보좌관, 상공부 자문위원, 은행감독원 금융분쟁위원회 위원, 증권관리위원회 비상임위원, 중앙일보 사외이사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며,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설립변호사(Founding Partner)이다. 1964년 제2회 사법시험을 차석으로 합격한 후 현 사법연수원의 전신인 사법대학원을 마치고 미국에서 유학해 시카고대 로스쿨과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1] 당시 미국 로스쿨에 들어간 한국 유학생들이 1년 남짓한 외국인 전용 LL.M.(법학석사) 과정을 밟는 것과 달리 미국 로스쿨에서 미국 학생들과 같이 3년간 공부하여 정규과정 학위인 J.D.(법무박사) 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한국인이다.[2][3] 1970년 하버드 로스쿨 졸업후 국제 로펌 베이커 앤 맥켄지의 시카고 본사와 일본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고 귀국한 후 1973년 1월 김&장을 설립하였다. 국내 전문 로펌시대를 본격적으로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학력 [ 편집 ]
자격취득 [ 편집 ]
변호사, 대한민국 (1966), 일리노이주 (1970)
경력 [ 편집 ]
베이커 앤 맥켄지 시카고 사무소, 도쿄 사무소 변호사(Associate) [8]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강사 (1970-1971)
국무총리실 법무담당보좌관 (1970-1971)
법제처 전문위원 (1972)
김앤장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1973-)
재무부 외자도입심의위원회 위원 (1981-1982)
법무부 민상법개정 특별위원회 위원 (1981-1984)
상공부 통상정책자문위원 (1986-1990)
상공부 무역위원회 무역위원 (1987-1990)
대통령자문 21세기 위원회 위원 (1989-1994)
은행감독원 금융분쟁조종위원회 위원 (1991-현재)
증권관리위원회 비상임위원 (1991-1995)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고문
한미우호협회 부회장
논문 및 저서 [ 편집 ]
군비축소를 통한 대한민국의 통일 (법학, 서울대학교,1972)
외국인투자기업을 위한 세법 (한국의 외국인투자와 그 법률적 문제에 대한 세미나,1974)
Doing Business in Korea:, Korean Journal of Comparative Law, Volume II. (한국비교법학회 편,1974)
Full Faith & Credit and Government Owned Banking Institutions in Korea (공저, Korean Journal of Comparative Law, Volume VI. 한국비교법학회,1978)
Chattel Security in Korea (공저, Korean Journal of Comparative Law, Volume VII. 한국비교법학회,1979)
해외증권 발행의 법과 실무 (공저, 한국경제신문사,1989)
경영의 고도기법 M&A (공저, 중앙일보사,1991)
표창 [ 편집 ]
2007년 제41회 납세자의 날 행사에서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부터 모범성실납세자 표창을 받았다. 김앤장은 네 차례에 걸쳐서 납세자의 날 표창을 받았으나, 김영무 개인으로서는 처음이었다. 당시 국세청 관계자는 “모범성실납세자는 세금납부의 성실도를 기준으로 선정하는데 김영무씨도 이 기준에 따라 선정되었다”라고 말했다.
김앤장 2세 승계작업 착수했다
김영무 대표변호사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내자동 세양빌딩 로비. / 이상훈 선임기자
김앤장은 서울 종로구 일대 빌딩 6곳에 나눠 입주해 있다. 메인빌딩인 세양빌딩 전경. / 이상훈 선임기자
김앤장 법률사무소 설립자 김영무 대표 변호사는 1942년생으로 우리나이로 75세다. 31세이던 1973년, 서울 광화문에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세운 뒤로 43년이 흘렀다. 김 대표는 여전히 김앤장을 실질적으로 소유한 카리스마 오너다. 하지만 불세출의 그라도 얼마나 더 조직을 장악할지 장담할 수 없으며, 어쩌면 이 사실을 그 자신이 더 잘 알지도 모른다. 1942년 동갑내기인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진작에 승계작업을 시작했는데, 이를 맡아 처리한 것이 김앤장 법률사무소다.김 대표는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남 김현주 미국변호사는 1972년생으로,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사법시험에 몇 차례 응시했다가 대학 졸업 후 미국 뉴욕대 로스쿨(LL.M.)에서 공부했다. 유학 시절 만난 GS그룹 허창수 회장 장녀 허윤영씨와 2006년 결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1년 헤어졌다. 1974년생인 딸 김선희씨는 현대비앤지스틸 정문선 부사장의 부인으로,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가 아랫동서다. 승계대상이라고 얘기가 나오는 사람은 아들 김현주 미국변호사다.이쯤에서 왜 법조계 안에서도 유독 김앤장에서만 승계 얘기가 불거지는지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우선 김앤장을 제외한 우리나라 모든 대형 로펌에는 오너가 없다. 법무법인 형태인 이 로펌들은 파트너(구성원) 변호사와 어소시에이트(소속) 변호사로 나뉘는데, 파트너는 지분을 공유하고 어소시에이트는 월급을 받는다. 구성원 변호사가 되려면 소속 변호사로 경력이 쌓여야 한다. 파트너들은 법무법인을 공동으로 소유해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를 고용하고 이익을 나눈다. 자기 지분만큼만 권한을 행사한다. 대표변호사도 타이틀에 불과하고 설립자들도 특별한 힘이 없다.법무법인 태평양을 1980년에 설립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김인섭 변호사다. 태평양 법무법인 영문명 배김앤리(Bae, Kim & Lee)에서 김이 바로 그다. 2002년 김 대표변호사는 65세에 은퇴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면서 태평양을 떠났는데, 당시 본인 소유 모든 지분을 로펌에 귀속시켰다. 2012년 아들 김재승 부장판사가 법복을 벗고 태평양에 입사했지만 다른 파트너 변호사와 다를 게 없는 맨손이었다. 여기에는 김인섭 변호사 개인의 결단도 있었지만, 지분이 나뉘어 있는 로펌의 지배구조상 어찌할 수도 없었다.비슷한 경우로 신영무 변호사는 법무법인 세종 설립자다. 이 회사 영문명인 신앤김(SHIN & KIM)에서 신이 신 변호사다. 2013년 신 변호사는 자신의 딸인 신서영 미국변호사에게 세종의 일부 지분을 넘기려고 했다. 정확히는 지적재산 분야의 주요 직책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파트너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결국 신영무 변호사는 자신의 딸을 데리고 나가 법률사무소 신앤박을 새로 만들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 자신이 만든 세종과는 좋지 않게 헤어진 셈이다. 다른 법무법인들처럼 깔끔하게 떠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이러한 상황에서 김앤장의 승계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다른 로펌과 달리 김영무 대표가 오너라서다. 모든 변호사가 김 대표와 계약을 맺는 방식이라고 한다. 김앤장은 법무법인이 아닌 공동법률사무소인데, 변호사들은 일종의 월급을 받는 셈이다. 월급을 주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김 대표다. 김 대표는 지난 40여년 동안 강력한 리더십과 탁월한 판단력으로 김앤장을 아시아 최고의 로펌으로 만들었다. 오늘날의 김앤장은 김영무 대표가 없이는 불가능한 길이었다는 게 국내외의 일관된 평가다. 그리고 김영무 대표가 7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포스트 김영무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포스트 김영무 작업을 주도하는 핵심 인물은 김진오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1970년생으로 서울대 법대 90학번인 김 변호사는 1994년 36회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한 뒤 법무관을 거쳐 2000년 김앤장에 입사했다. 한 학번 후배인 김현주 미국변호사와는 대학시절부터 가깝게 지냈다. 인수·합병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2014년 안호이저부시인베브(AB InBev)의 오비맥주 인수(약 6조2000억원), ADT캡스 매각(약 2조원) 등을 성사시킨 주인공이다. 이 때문에 그가 승계작업을 주도하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법조계에서는 말한다.김 변호사는 후배들을 혹독하게 교육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드라마 에서 김명민이 맡았던 김앤장 변호사의 실제 인물이 있다면 바로 김진오다”라는 말도 김앤장에서나온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후배들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경력 15년차여서 여전히 젊은 그룹에 속한다. 20년차 이상 시니어급에서는 그가 주도하는 승계작업에 불만을 나타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얘기가 철옹성 같은 김앤장 밖으로 퍼져 나온 것은 이 무렵 김앤장 변호사들이 회사를 떠나면서다. 취재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를 보면, 김앤장 퇴사자는 2014년 47명, 2015년 59명, 2016년 4월까지 11명이다. 최근 24개월로 계산하면 모두 117명이다. 전례가 없는 수치다. (일부 해외 연수자가 포함돼 있지만 미미하다)법조계 관계자들은 “수치상 김앤장 변호사 숫자가 늘었지만 이는 로스쿨 도입 이후 한 해 40명 가까이 뽑는 등 리크루트 방식이 달라져서다. 김앤장의 핵심 중견 인력들이 최근 2~3년 사이에 적잖게 빠져나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 1119호 ‘독보적 1위 김앤장 흔들리는 독주’ 참조) 김앤장을 나간 변호사들이 가장 많이 옮겨간 곳은 법무법인 율촌과 이제 법률사무소다. 법조계 관계자는 “율촌이 1997년 우창록 대표변호사가 김앤장에서 독립해서 만든 곳이라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앤장은 율촌이 성격은 비슷하면서도 경쟁력은 떨어진다고 생각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오히려 김앤장이 바짝 긴장하는 것은 이제 법률사무소다. 2013년 김앤장을 떠난 박상열 변호사가 2015년 후배들과 함께 만든 중소형 로펌이다. 오관석, 권국현, 남현수, 김동원, 이도형 등 김앤장의 유명 변호사들이 합류했다. 이 때문에 김영무 대표변호사가 “이제, 그만 좀 빼가라고 해라”라고 말했다는 소문도 있다. 이런 위기감을 법조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김앤장의 역사가 40년이 되면서 과거 임원들을 따라 김앤장에 오가던 대기업 말단들이 임원이 됐다. 김앤장 변호사들 개개인의 실력을 빤히 알고 개인적 믿음도 있어 독립해서 낮은 가격에 계약하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김앤장으로서는 자칫 제2, 제3의 이제가 나올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최근 법조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김앤장의 인력 이탈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있다. 경쟁 로펌을 비롯한 일부에서는 “승계작업을 위해 시니어급 변호사들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승계에 반대하거나 불만을 가진 최고참 변호사들이 잘려나간다는 것이다. 김앤장 내부를 비롯해 다른 일부에서는 “승계작업에 반발해 변호사들이 스스로 떠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변리사와 외국변호사가 많은 지적재산(IP·Intellectual Property) 분야를 김현주 미국변호사에게 맡기려 하자 일반법무 분야 까지 장악할 것을 우려한 한국 변호사들이 불만을 갖고 사표를 쓴다는 얘기다.앞으로 김앤장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일부에서는 포스트 김영무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앤장이 성공한 요인은 두 가지다. 유학제도를 통한 최고급 인재 양성과 김영무 대표가 사재를 털어 회사에 투자하고 움직여 온 것이다. 하지만 유학제도는 일반적인 것이 됐고, 김영무 대표의 투자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 됐다. 김앤장이라는 이름만 유지한 채 내부는 큰 덩어리로 나뉠 것이다.”반면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김앤장의 승계작업이 안착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찮다. “수많은 최고급 인재들이 만들어놓은 데이터가 모두 김앤장 안에 있다. 자신이 김앤장에 근무했다거나 데이터를 만들었다고 밖에서도 재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엄청난 데이터들이 합쳐졌을 때 전에 없던 효과를 만드는 것이다. 김앤장은 세력이 나뉘어서는 김앤장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안다.”
대한민국 ‘연봉 킹’은 누구?
[분석]자생한방병원 S씨 연봉 204억, ‘김&장’ 대표 김영무 변호사는 600억 원 소문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email protected]
지난 4월 3일 취업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는 국내 주요 상장기업과 코스닥 기업 등 대기업 146개사(社), 중소기업 197개사, 공기업 20개사, 외국계 기업 41개사 등 404개사의 대졸 신입사원 평균연봉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400여 개 대기업의 4년제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3773만 원, 공기업은 3125만 원, 외국계 기업은 3110만 원이었다.
업종별로는 금융 분야 신입사원 연봉이 4082만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자동차 3988만 원, 제조업 3840만 원, 조선 및 중공업 3840만 원이었다.
반면 식음료 업계는 3570만 원, 기계 철강은 3558만 원, 제약 2968만 원이었다. 국내 대졸자의 90%가 취업하는 중소기업 신입사원의 연봉은 2490만 원이었다.
대기업 CEO 연봉 1~3위 삼성전자가 싹쓸이
그렇다면 신입사원 100명 중에 1명이 임원에 오르고, 임원 100명 중 1명이 오른다는 대기업 CEO 연봉은 얼마나 될까.
대기업 CEO 연봉은 올해부터 5억 원 이상 연봉을 받는 등기임원들의 보수총액을 공개하도록 한 제도 때문에 각 대기업들은 3월 31일 주요 임원들의 연봉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CEO 가운데 최고 연봉 수령자는 신종균 삼성전자 ‘IM(정보기술-모바일)’ 부문 사장으로, 그는 지난해 145억72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월 급여로 환산하면 12억1433만 원, 월 22일 근무하는 것으로 계산하면 하루 일당이 5519만 원이다.
CEO 최고 연봉 2위는 삼성전자 DS(부품) 부문장인 권오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93억9000만 원, 3위는 삼성전자 CE(소비자 가전) 부문장인 윤부근 대표이사 사장으로 54억9500만 원이었다.
4위는 유성티엔에스의 이봉관 이사로, 그가 받은 연봉은 퇴직금 47억 원을 포함, 52억4000만 원이었다. 이 이사는 서희건설이 소속되어 있는 서희그룹의 최대 주주 겸 회장이다.
서희건설은 신도 1만 명 이상의 국내 대형교회 건설을 도맡아 하다시피 하는 유명 건설회사다. 유성티엔에스는 서희그룹의 지주회사다. 이 이사는 서희건설에서도 연봉 9억 원을 받아 실제로는 국내 CEO 가운데 연봉 3위다.
제로투세븐이라는 회사의 조성철 사장은 2014년에 50억80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름조차 생소한 회사에서 대체 어떻게 이 정도 연봉을 받을 수 있나 의아하겠지만, 매일유업과 묶어 보면 그 비밀을 엿볼 수 있다.
제로투세븐은 수유 전문 브랜드 ‘토미티피’를 독점 수입 유통하는 매일유업의 자회사로,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의 동생인 김정민 씨가 회장이다.
▲ 다음카카오 이석우 공동대표
조성철 사장은 스톡옵션(주식매수 선택권)으로 48억500만 원을 받았다. 이를 제외하면 실제 연봉은 2억7800만 원이었다.
그 다음 순서는 이석우 다음 카카오 공동대표로 42억5000만 원을 연봉으로 받았다. 실제 급여 1억8000만 원, 상여금 6500만 원을 제외한 40억 원이 스톡옵션 행사 이익이었다.
그 뒷순서는 삼성그룹 전문 경영인들이 차지했다. 이상훈 삼성전자 CFO가 38억6400만 원, 박상진 삼성 SDI 전(前) 사장 34억4000만 원, 김 신 삼성물산 대표 24억40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연봉이 거의 로또 1등 당첨 수준이다.
대기업 오너 연봉 랭킹
코스닥 기업 CEO들도 삼성전자 부럽지 않은 고액 연봉을 받은 이들이 많다. 다음 카카오의 이석우 공동대표에 이은 고액 연봉자는 이희상 엔씨소프트 부사장. 그는 스톡옵션 행사 이익을 포함, 2014년에 32억8600만 원을 받았다.
호텔과 카지노 사업으로 유명한 파라다이스 그룹의 전필립 회장은 급여 9억6000만 원과 자녀 해외유학 학자금 등 상여금 24억 원 등 총 33억65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파라다이스 그룹은 2014년 3명의 등기이사에게 44억4300만 원을 지급했다. 이밖에 다른 기업 CEO 중 지난해 고액 연봉자는 다음과 같다.
▲이순규 대한유화 회장 20억6600만 원 ▲곽동신 한미반도체 부회장 20억3700만 원 ▲최양하 한샘 회장 17억6600만 원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 17억4000만 원 ▲황동진 메디포스트 사장 11억1521만 원 ▲오원일 메디포스트 부사장 11억7185만 원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 11억850만 원 ▲강석희 CJ E&M 대표 9억2200만 원 ▲허태수 GS홈쇼핑 대표 15억5600만 원 ▲변동식 CJ오쇼핑 대표 8억2100만 원.
▲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
그렇다면 국내 대기업 오너들의 연봉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국내 기업 가운데 공식적으로 최고 연봉을 받은 사람은 현대자동차 그룹 오너인 정몽구 회장이다.
2014년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건설로부터 받은 연봉은 107억5000만 원, 현대제철에서 9년 동안 사내이사를 맡았다가 떠나면서 받은 퇴직금이 94억여 원이다. 총액은 215억7000만 원으로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두 번째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으로 2014년 178억9700만 원을 받았다.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오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었다. 조양호 회장은 2014년 61억 원을 받았다.
그의 큰 딸인 조현아 전(前) 대한항공 부사장은 2014년 연봉으로 14억8000만 원을 받았다. 이 가운데 6억8000만 원이 대한항공 등기이사를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이었다고 한다.
▲ 아모레퍼시픽그룹 서경배 회장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보다 돈이 더 많다고 평가받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2014년 연봉은 44억35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133% 인상됐다.
중국 시장에서의 성장세, 최근 회사 주가가 300만 원을 돌파하는 ‘황제주’에 오르는 등 실적이 양호한 덕분이다. 이밖에 다른 대기업 오너들의 2014년 연봉은 다음과 같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44억2300만 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43억5000만 원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40억 원 ▲구자엽 LS전선 회장 79억 원(LS전선, 가온전선의 연봉과 가온전선 퇴직금 34억8800만 원 포함) ▲구자열 LS그룹 회장 37억2800만 원 ▲구자용 E1 회장 28억5500만 원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겸 LS미래원 회장 22억500만 원 ▲구자균 LS산전 회장 19억9700만 원 ▲구자철 예스코 회장 10억 900만 원.
무시무시한 연봉 받는 전문직 CEO들
▲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한편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 그룹 부사장 등은 등기이사가 아닌 탓에 연봉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삼성 전 계열사로부터 연봉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대기업 오너와 전문 경영인들의 연봉을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전문직 기업 오너들이 그 주인공이다.
2013년 10월 21일 국내 언론은 국회 국정감사 당시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이 건강보험관리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역산하여 공개한 ‘국내 고액연봉자 20인 명단’을 보도했다.
여기서 국내 최고의 고액 연봉자는 대기업 오너나 전문경영인 출신이 아니라 자생한방병원에 근무하는 S씨였다.
그의 월 급여는 17억 원, 연봉으로 환산하면 204억 원이었다. 세간에서는 자생한방병원 이사장인 신준식 병원장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난무했다.
두 번째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대목산업개발의 J씨. 그는 월 급여 14억4300만 원, 연봉으로 환산하면 173억1600만 원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대목산업개발이 건설회사인 줄 알고 대한건설협회와 전문건설협회 회원 명부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이런 업체는 없었다. 뒤를 이은 고액 연봉자들은 다음과 같다.
▲한국정밀의 L씨 161억5200만 원 ▲영신공업사의 Y씨 126억 원 ▲라파 메디앙스 정형외과의 K씨 111억1200만 원 ▲신선식품의 O씨 109억2000만 원 ▲밝은성모안과의원의 K씨 107억400만 원 ▲비아이씨(주)의 K씨 101억400만 원 ▲보람장의개발의 C씨 93억9600만 원.
김현숙 의원이 언론에 공개한 최고액 연봉자 20명 가운데 전문직 종사자 또는 개인사업자가 60%(12명)을 차지했다.
이 가운데 대목산업개발, 한국정밀과 같은 기업은 실체 파악조차 어려운 개인사업자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당시 ‘초고액 연봉 급여자’로 지목된 사람들 가운데 의사들은 “실제 연봉이 높은 게 아니다”라며 반발했다.
현행법상 병원은 영리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때문에 사실상의 영리 활동인 진료로 벌어들인 돈을 병원법인의 매출이 아니라 개인 소득으로 신고할 수밖에 없어 생기는 착시(錯視)라는 설명이었다.
의료법인을 둘러싼 현행법의 문제점은 또 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개인병원이 수익이 생겨 연구개발에 자금을 투입하려 해도 고유 목적 외에는 투자가 제한되는 법 때문에 이를 병원장 개인 급여로 지급하는 것처럼 형식을 갖춘 다음 연구개발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 의료 관계자들은 때문에 자생한방병원에 근무하는 S씨의 경우 병원 전체 매출이 마치 그의 ‘월 급여’처럼 국세청에 소득신고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연봉 600억 원의 주인공은?
자생한방병원의 S씨 등 소위 잘 나가는 ‘의사’들과 비교가 안 되는 고액 연봉자가 한 명 있다.
임종인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회 발언을 통해 “2005년에 김앤장 대표변호사인 김영무 변호사가 570억 원을 소득으로 신고해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을 제치고 우리나라 개인 소득 신고 1등을 했다. 2006년에는 600억 원의 소득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국내 1위 로펌인 김앤장의 설립자 김영무 변호사는 9년 전에 연봉이 600억 원이었다.
월 급여로 환산하면 50억 원이다. 김 앤 장은 2013년 8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변호사 550명, 국제 변호사 120명 등 총 직원은 2000여 명이다.
현재 서울 내자동에 있는 센터포인트 빌딩과 노스게이트 빌딩, 적선 현대빌딩, 한누리빌딩, 세양빌딩 등 5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김앤장은 일반적인 로펌처럼 ‘법무법인’이 아니라 파트너 변호사 개인들이 연합한 ‘합동법률사무소’ 형태로, 매출액이나 변호사 1인당 수임료 등이 베일에 싸여 있다.
전직 장차관, 전직 대법관 등을 상임고문으로 두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 좌파 진영으로부터 늘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
김앤장에는 건강보험료 부과기준으로 월 7810만 원 이상을 받는 봉급생활자가 140명이 넘는다.
물론 100여 명의 파트너 변호사가 회사가 지출하는 비용을 함께 부담하기 때문에 연봉 속에 허수가 많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들의 연봉이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현재 5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2306개 회사 등기임원 662명이다. 연봉 5억 원 안에는 급여 외에도 상여금, 퇴직금, 위로금, 스톡옵션이 모두 포함돼 있다고 하나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미생’ 신입사원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다.
중소기업이라도 취업한 젊은이들은 그나마 행복한 편이다. 지난 5년 새 대졸자(大卒者) 절반 이상이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고 있다.
취업자 통계에 포함된 젊은이들도 1~3년을 버티지 못하고 이리저리 일터를 옮기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젊은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창업에서부터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꿈’ 대신 안정적인 삶을 위해 공무원과 공기업에 도전하고 있다.
언론들은 CEO와 신입사원 간의 연봉 격차를 지적하지만, 실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문제는 연봉이 아니라, ‘꿈’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끊어져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희망이었던 ‘꿈’을 향해 올라가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는 복원될 수 있을까.
키워드에 대한 정보 김영무 재산
다음은 Bing에서 김영무 재산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베일에 가려진 김앤장의 대표, 김영무 변호사
- 김앤장
- 김영무
- 장수길
- 김영욱
- 김승현
- 이현경
- 운현궁
- 변호사
- 로펌
- 법무법인
- 광화문
베일에 #가려진 #김앤장의 #대표, #김영무 #변호사
YouTube에서 김영무 재산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베일에 가려진 김앤장의 대표, 김영무 변호사 | 김영무 재산,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